토요일 저녁 서쪽 하늘이 불그스름해질 즈음이면 시장바구니 하나 챙겨들고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그 길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버스 정류장과 기다리는 사람들, 늘 익숙한 가게 풍경들 사이로 걸어갈 때 늘 다른 나와 만나게 된다. 때론 휘몰아치는 고통과 번민 가운데 있기도 하고, 때론 넘실대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행복에 겨울 때도.
요즘은 자주 평안하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그 길에 뿌렸던 고통과 번민과 분노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안은 그저 나이먹으면 가질 수 있는게 아니다. 그래서 그 황량한 한겨울 뒷골목 같은 번민이 다시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게 될까봐 두려워질 때도 있다.
이제야 조금 알 수 있다.
내가 고통 가운데 허덕일 때 거기에 함께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은 욕심이었다. 고통을 떠나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욕심도 함께 떠나 보내야 한다. 우리는 욕심을 소망이나 희망이나 열정이나 그런 것들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의 성분을 구분하는 방법은 그것이 가슴을 후벼파는 번민을 동반한 고통이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것이라면 욕심이고 고통과 함께 떠나보내야 할 것들이다.
요즘 평안의 비결을 배웠다.
내게 주어지는 일과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마음 속에 기대와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일,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하다 못해 버스를 타는 일도.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은 그 기대와 계획대로 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분노한다. 그런데 만일 우리의 기대와 계획이 우리를 더 유익하게 하지 않는 잘못된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면 어떨까? 그것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리는 제 아무리 지식과 경험을 짜내어도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연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이다. 우리가 짜내고 결론지은 기대와 계획이 아무리 치밀해도 우리에게 항상 유익하고 선하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굳이 헛된 기대와 계획을 만들어 놓고 퍼즐맞추기를 하면서 자신을 힘들게 할 것인가?
나는 내 기대와 계획과 다른 상황이 주어질 때, 잠깐 생각한다. '아. 이것이 내게 더 유익하고 선한 길이구나. 주께서 내게 이 길로 가라고 하시는구나.' 라고. 그러면 곧 평안이 내 곁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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