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뜨거운 여름기운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 조각씩 가을기운이 느껴지면 가을의 그림들이 떠오른다.
가을이 되면 갓 내린 뜨거운 커피를 마실 일이 가장 기대가 된다.
커피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뜨거운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면 후끈한 열기가 몸에 오른다. 가을의 찬 기운이 가장 그리워지는 때다.
볶은 커피가 맛있는 집을 부지런히 찾아 옮겨서 사먹다가 실망하고는 결국 내가 가야할 길을 가게 되었다. 생두를 사서 직접 볶는 일이다.
살림경력 삼십여년이면 모든 음식에 굳이 정확한 레시피 없이도 실패는 하지 않는다. 내가 볶아온 참깨, 다양한 멸치 볶음과 하물며 감자볶음에까지... 팬의 속성과 가스렌지 불의 성질, 모든 재료들의 색깔과 맛의 관계 등을 알아온 긴 시간이 아니었겠는가. 한번도 접해본 적 없는 서양문물인 커피콩 일지라도 그것을 길러낸 흙과 물과 햇빛은 동일한 것이니 뭐 굳이 두려워할 것은 없어 보였다.
아무 준비도 없이 생두를 팬에 들이 붓는 것을 본 남편은 옆에서 SNS에 돌아다니는 레시피들을 들이댄다. 약한 불에서 몇 분, 식힐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데...
나는 내 방식대로 볶아 냈고, 결국 맛잇게 내려진 향긋한 커피는 내 손을 들어 주었다.
아. 이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가을을 지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