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사무실 친구가 '펑펑 울고 싶으면 이 영화를 보라'고 했다.
1987년은 우리가 대학에 입학한 해다. 1987년부터 단짝 자리를 한번도 내어주지 않은 30년 지기 친구에게 같이 보자고 했다. 친구는 인사이동이 있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단다. 또 여느 때처럼 남편과 작은 딸과 셋이서 봤다.
영화도 무슨 유비무환(?)인지 손수건을 넉넉히 준비하면 눈물이 많이 나지 않는다.
1987년.
우리들에게 대학은 날마다 데모하는 곳, 수업거부와 시험거부를 밥 먹듯이 하는 곳이었다.
한번도 어른들에게, 기존 권위에 반항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우리는 대학 1학년이 된 후, 스무살이 된 후에는 모든 기존 권위에 다 반대하고 있었다.
그저 '이것이 대학생활'이구나. 그랬다.
날마다 최루가스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데모대열에 참여하든지, 집으로 몰래 도망가든지 우리의 선택은 이 둘중 하나였다. 데모를 피해 학교 정문이 아닌 산능성이를 타고 몰래 집으로 달아나는 날은 양심에 거리끼곤 했다.
건물 외벽이나 깃발마다 붉게 쓰여진 구호가 뭘 의미하는지도 모른채 그저 앞장선 선배들을 따라 오른손을 치켜들며 앞으로 나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누구나 역사의 한 가운데서는 그 의미를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몸부림이 나름대로 역사에서 가치가 있었다니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서 눈물을 흘리겠는가. 그 통곡의 몸부림이 불러내는 모두의 인생에 박혀있는 슬픈 기억으로 울었으리라. 아들은 똑똑하여 정의를 알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잃었는데, 아직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모는 마음껏 통곡할 현실도 못되었으니 참으로 가슴아팠다.
권력을 유지하고자 욕망에 사로잡힌 독재자 아래에서는 모두가 피해자다.
어쩌면 정의를 마음껏 행동하다 간 자 보다, 자기가 옳다고 여기지도 않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자가 더 불쌍할 지도 모른다. 나는 고통을 준 자도 당한 자도 모두 하나같이 연민이 느껴져 정작 누구를 위해서도 마음껏 울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정의를 위해 투쟁한 자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그 진실을 밝혀낼 수 있어서, 그래서 서로 위로할 수 있어서, 그래서 우리가 용기를 낼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해서 보수와 진보의 자리바꿈으로 역사가 왜곡되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고, 우리 모두는 더 현명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