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신 몸이라 늘 잠깐 오셨나 싶으면 가고 없는 게 봄이다. 그래서 모두 호들갑스럽게 맞이하는가 싶기도 하다.
아침마다 카톡을 보내시는 퇴직하신 국장님. 어느 날 아침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을 보내 주셨다. 카톡으로 보내주신 봄 맛은 어떨까.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을 크게 틀어놓고 커피를 내려마신다. 궁핍한 봄이다. 봄이 더 고파질 뿐이다.
남편과 잠시 시간을 내어 '봄이 오셨다 카드라' 하는 곳으로 가 보았다. 벌써 지나가신 게 분명한 듯 하얀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그래도 '나 올해도 그분을 뵈었다'며 사진 하나 남긴다. 여전히 고프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봄맞이는 쑥캐기다.
3월의 어느 날 나이 지긋한 주부들 밥상에 같이 둘러 앉았었다. 처음부터 쑥 이야기였다. 어디에서 쑥 많이 캔 이야기, 쑥 캐다가 겪은 황당한 이야기, 언제 어디로 꼭 쑥 캐러 가자는 이야기... 쑥은 입으로 수없이 노래하고 초록물 들인 손톱으로 먼저 맞이한 후에 마지막에는 온 몸과 세포 곳곳에 봄으로 채워넣는다. 쑥은 봄의 효심 많은 장녀다. 그러나 쑥도 그 부모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터라 잠깐 보이다가 얼른 사라지고 만다. 그녀를 만나려면 겨울이 채 떠나기 전 일찌감치 채비를 하고 나서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
언제쯤 봄을 만나 실컷 놀다가 손 흔들며 여유롭게 보낼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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