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지랄도 멍석 펴 놓으면 안 한다' 는 말이 있다.
자식을 키워도 한껏 기대를 품고 정성껏 뒷바라지한 자식보다 별 기대없이 알아서 하게 냅둔 놈들이 더 나은 경우들도 많다.
책갈피도 그렇다. 책갈피 얘기를 너무 거창하게 시작했나?
나는 출퇴근 시간이나 짬짬이 책을 읽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다 읽는데 여러 날이 걸린다. 그러니 읽던 곳을 표시해 두는 책갈피가 꽤 중요하다.
화려한 금속이나 매끈한 코팅을 입혀서 온갖 장식을 달고 시중에 판매되는 책갈피는 내게 영 쓸모가 없다. 오히려 제 위치에서 이탈하거나 손에서 미끄러져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 제 본분을 잊고 자기가 주인공인양 착각하는 것 같다. 책갈피는 책 사이에 얌전히 끼워져 있다가 주인이 책을 읽는 동안 적당한 곳에 꼼짝 않고 있으면 된다. 그러려면 매끈하면서 화려한 술이 달려 멋부린 것들은 영 부담스럽다. 내가 좋아하는 책갈피는 물건에 달린 종이 상표다. 약간의 마찰력을 가진 투박한 상표일수록 더 좋다.
물건에 붙어서 진열장에 놓여 있다가 제 주인을 만나 물건에서 잘려 나가는 순간 생을 마치는 상표는 어쩌다 특이한 사람(나)의 눈에 띄어 또 한번 보람된 생을 살게 된다. 이전이 세속적인 삶이라면 이번엔 좀 더 고상한(?) 삶이라고 불릴 수 있겠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