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황매산 등산

안동꿈 2019. 5. 4. 21:32

지난 토요일 직장 신우회에서 황매산을 다녀왔다. 철쭉제 첫날이라 복잡하리라 판단한 주최측에서 7시 10분까지 모이라는 공지가 왔다. 토요일엔 아메리칸 브랙퍼스트(?)를 찾는 남편을 위한 샌드위치와 종일 식구들이 먹을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나가느라 시간 맞추기가 빠듯하였다. 


대형 관광버스에 몸을 싣고 황매산으로 출발하였다. 며칠 내린 비로 깨끗하게 씻긴 세상은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신앙과 꿈과 근래 마음을 쏟는 일 등 다양한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롭고 감동적이었다. 몇 십 년을 같은 직장에서 생활한 이들이니 별 기대를 안했는데 모두 다른 모양, 다른 사연들을 품고 있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에게서 감동을 받은 것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실은 각각의 다른 일생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온 내 일생의 보따리가 커질수록 이제는 모든 사람을 만날때 존경심마저 생긴다. 우리는 온 우주의 비협조 가운데서 각자의 인생의 연수만큼 잘 버텨온 것이니까.




시 신우회장은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다. 올해 6월말로 퇴직 예정인 분인데 마지막 열정으로 회장직을 수행하고 계셨다. 성경퀴즈를 준비해 오셨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답을 못마추는 우리들을 향해 막 호통을 치신다. 그 연세에 흔들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역방향으로 오래 서서 진행을 하는데도 끄떡 없다. 더 젊은 우리들은 무거운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그 열정 앞에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1,108m의 황매산은 오르기에 그다지 힘들진 않았다. 여든이 다 된 분들이 쉬엄쉬엄 오르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좀 숨이차다 싶게 헤쳐 나왔을때 탁 트인 전경이 우리를 맞았다. 기대한 철쭉은 아직 개화하지 않았다. 민둥산같은 철쭉 군락지가 거대한 천막처럼 펼쳐진 것이 우리나라 여느 산과는 달라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어느 누구도 철쭉없는 황매산 등산을 결정한 것에 대해 불평 비슷한 것조차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밤 늦게까지 일에 파묻혀 지내다가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빛과 연한 나뭇잎들, 발 밑에 느껴지는 폭신한 흙길이 감동스러울 따름이었다.


언젠가는 붉은 철쭉이 불타는 황매산 등산이 우리 일생의 보따리 끄트머리 어디쯤에라도 던져 넣을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황매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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