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저녁강가 단상

할아버지와 손자

안동꿈 2019. 7. 3. 19:00

저녁 9시쯤, 늦은 퇴근 길이었다.

사무실을 나서 골목 어귀를 도는데 여든은 족히 넘을 듯한 할아버지가 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담배불을 당겨 붙인 남자아이를 향해

"△△야. 오늘 꼭 들어온내이. 내 밤새 안자고 기다리고 있을끼대이" 라며 조용하고 공손(?)하게 애원한다. 어르신의 두 손은 아랫배쯤에 다소곳이 포개어져 있다. 

천천히 걸어, 그 어르신을 스쳐 지나가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누군가가 '왜 울었느냐고, 눈물이 그렇게 싸냐'고 굳이 묻는다면 

'동생을 업고 가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노래 가사처럼 그런 색깔의 슬픔이 아닐까 그렇게 변명해 본다.


그 아이에게 가서 무엇이라도 하여 할아버지를 돕고 싶었지만, 그 어르신이 자기 손주에게도 어찌할 수 없어 두손을 공손하게 모아 마치 신에게 빌듯 애원하는 모습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단 1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게 너무나 적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보다는 상처와 좌절중에 있는 사람에게서 위로와 동질감을 얻는다. '나만 실패하는게 아니구나.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는 승리자에게서는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남의 슬픔으로 또한 나의 슬픔으로 우는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