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저녁강가 단상

이십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안동꿈 2009. 11. 28. 16:52

'젊은이, 청년' 이런 호칭에서 어느덧 멀리 떠나온 지금, 다들 한번씩은 생각해 보게되는 주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다시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은가?'

'NO'

나의 이십대가 남달리 불행해서도 아니요, 그시절 후회없는 삶을 보내서는 더더욱 아니다. 후회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그랬겠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유달리 이리저리 많이 기웃거려는 보았는데, 손에 잡히는건 하나도 없이 지내온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지만 1등은 못해봤고, 열심히 산다고 방학때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번도 방학을 그냥 지낸 적이 없지만 마음 편히 갖고 싶은것 사 본적도 없다. 아마 학비에 톡 털어 넣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연애에 관하여는, 누구보다고 내 속에 열정적인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나의 감정을 전혀 드러내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된 연애 한번 못해봤다. 주변의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 생기면 나는 즉각적으로 그걸 숨길 궁리부터 하였다. 아니 오히려 내 마음의 방향과 반대로 행동하였다. 아마 나의 감정을 섣불리 드러냈다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으리라. 지금 돌아보면 젊은이 답지 않은 비겁한 행동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때 늘 마음에 담겨있던 생각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고백할 수 있을텐데' 라고.

 

그러나 십대에 꿈꾸고, 이십대에 고뇌하고, 삼십대에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행동하며 지나온 시간들로 인해, 사십대. 여전히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해야만 주변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시간들이지만 몇 퍼센트(약 3분의1)는 습관으로 굳어져서 나와 내 주변의 긍정적인 정체성을 유지시켜주고 있으며, 몇 퍼센트(또 약3분의 1)는 여전히 책으로든 새로운 사람들에게서든 배우면서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한걸음씩 내딛고 있으며, 그 나머지 부분은 지나온 시행착오들로 인해 부정적인 열매들이 맺어지는 것 같은 염려로 후회하는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부정적인 열매들이 반드시 마지막 종착지에서 부정적인 결과로 남을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삶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이전의 나로 돌아가서 기필코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요즘 긍정적인 시각으로 쓰여진 나이듦에 대한 글들을 보고 많은 도전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드는 것에 대해 막연히 두려워 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나이들면서 죽음으로 한걸음씩 가까이 다가간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제 내 삶의 반 정도를 살아오면서(아니 6할 일수도 있고 9할 일수도 있겠지) 한 사람이 태어나서 투쟁하며, 고뇌하며, 성숙해지면서 한걸음씩 완성을 향하여 걸어가는 이 길. 이 인생이라는 것에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십대, 이십대 조금 더해 삼십대까진 날마다 싸우던 대상이었는데, 부딪히고 상처나고 달래고 어르고 다시 상처나고...

 

내가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상황에서는 동일하게 반응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나일뿐 다른 누구도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