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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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강가 단상

직장내 여직원들 호칭의 미묘함

안동꿈 2010. 1. 10. 18:23

40대 이전 세대들에게 종종 '실제나이와 주민등록상 나이' 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더 젊은 세대에게도 있을 수 있고, 더 나이든 세대에게도 일찍 깨인 부모덕에 실제 나이대로 정확하게 출생신고를 한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나는 실제보다 1년 10개월이 늦게 되어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주민등록과 상관없이 또래들이 입학할때 함께 들어갔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은 모두 나의 실제나이와 같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 중, 고, 대학교까지 학생의 신분일 때는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 한살 많고 적음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오히려 그것에 의미를 두는 걸 한두살 많은 친구들이 오히려 불편해 했을 정도인데, 직장생활중에는 그렇지 만도 않았다.

 

같은 부서에서 한 식구처럼 지내는 상황에서 굳이 직함을 부르면서 '김 ○○님' 하는 건 더이상 가까와질 수 없게하는 강력한 언어 같다. 특히 여직원들끼리는 비슷한 연배끼리 직함을 부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이가 많으면 '언니'라고 부르고, 같거나 어린 직원에게는 이름을 넣어 '○○씨' 하게된다. 그런데 문제는 한 직장내에 600여명의 직원이 함께 근무하게 되고 깊이 알든 얕게 알든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되니, 나이순으로 줄을 세우지 않는 이상 한살 차이로 ~씨, 하는가 하면 '언니' 하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알고 보면 내가 언니하는 사람과 ~씨하는 사람이 친구사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특히 나의 경우는 주민등록상 나이가 실제보다 어리게 되어있으니, 어느날 실제나이보다 한 살 어린 직원이 '언니'라고 불러서 또 그와 아는 직원이 나보고 '언니'라고 부르곤 했는데, 어느날, 후자가 '언니'라는 호칭을 빼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아마 내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을 우연히 본 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보는데, 그런 일을 당한 본인 기분도 참 묘했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빠른79, 빠른86 등' '빠른'이라는 것이 있어 한 살 많은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다닌 것도 직장내에 호칭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큰 요인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 사람과는 선후배인데, 저사람과는 친구사이인 그 미묘한 관계를 형성시키고 말았다.

 

이번에 옮긴 부서의 같은 계에, 실제 나이보다는 2살 어린데, '빠른○○'라서 한살 많은 친구들과 학교를 다녔고, 그래서 나의 주민등록상 나이와는 결국 맏먹어도 될 상황이 된 여직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서로 편하게 지내자'고 하였고, 나는 '○○씨'라고 불렀는데, 그는 호칭을 부르지 못하더니 이틀정도 지난 뒤 '언니'라고 부르는 것이다. 본인이 호칭을 정하지 못하니 불편한가 보았다. 

 

나에게는 신입사원때 이 호칭과 관련한 안좋은 추억이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선머슴 같은 풋내기가 먼저 사회물을 먹은 여직원들의 말에 숨겨진 속마음을 간파해 내지 못하여 생긴 에피소드라고 해두자. 처음 부서에 배치가 되고보니, 여직원이 두 명 있었다. 한 사람은 나의 실제 나이보다 세 살 많았고, 한 사람은 한 살 많았다. 한 살 많은 사람이 '정숙씨, 친구처럼 지내면 되겠네'라고 말해서, 내 나름대로 안돌아가는 머리라도 굴린 것이 '여자들은 나이 많은 걸 안좋아 하니, 언니 보단 친구로 지내는걸 더 좋아하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미경씨'라고 부르곤 했다. 두 세달 정도 지났을까, 세 살 많은 언니가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정숙씨, 미경씨한테 언니라고 부르지, 미경씨가 좀 섭섭한가 보더라' 그런다. 나는 정말 황당했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직장내 평화를 위해, 아니 내가 살아남기 위해 언니라고 불렀다. 아마 처음엔 희미하게 부르다가 차츰 적응해 간 것 같다.

 

여직원들의 직장내 호칭에 대해 생각해보니, 서열하면 남자들이 여자들 못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자들이야 고작 서열의 기준이 나이 정도지만 남자들은 나이는 기본이고, 학교 선후배, 군대 선후배, 입사 선후배, 고향 선후배 등 서열의 기준이 훨씬 복잡하지 싶다. 나의 이 글에 남자들이 '뭐 그까이꺼 갖고...'그럴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