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유능한(직장에서는 젊은 나이에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한 경우 이 표현을 쓰는 것 같다) 상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여자들이 모여서 수다 떨면서 전파하는 홍보 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여자들한테 잘 해야 성공하는 거야"
평소 큰 등치에 호탕하고 강한 추진력을 갖춘데다가 여직원들에게는 세심하게 배려하는 면까지 있어 그의 빠른 승진이나 좋은 보직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얼핏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 내비치는 '여자들에게 잘하는 이유'를 듣고는 정말 빈틈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그런 말을 듣고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목적을 가지고 대한다는 여지를 남겨두어 씁쓸하기도 하였다. 요즘같이 온갖 처세술이 갖가지 자극적인 제목으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는 배워야한다는 듯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때에 그런 자세를 나무라는 것은 너무 결벽증적인 태도일까.
그런데 정작 나는 여자인데도 남자들에게는 불편한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개선하도록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데, 여자들에게는 굉장히 고심하다가 적어도 다섯번 얘기할 것을 한번으로 줄이는 식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표현을 하더라도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눈치를 보며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된다.
아마 남자들은 우리들의 일상의 대화로 웬만해선 몸 깊숙히 박혀서 흐르고 있는 감정의 전류를 건들수 없고, 여자들은 감정선이 피부 표면에 노출되어 있어 조그만 감정의 언어에도 파파박 전기가 통하고 만다고 내 나름의 개똥이론을 도출해 내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도 웬만해선 남자직원이나 여자직원들 둘다 껄끄러운 관계는 잘 생기지 않는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로, 아침부터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직제개편으로 우리과 명칭도 바뀌어 진행되는 일마다 태클이 걸렸다. 그 와중에 휴가간 서무일을 대행하는 같은 나이의 여직원이 나에게 무얼 요구하는 내용의 자료를 가져왔다.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금 바빠서 나중에' 하고 지나쳤는데, 내가 서무에게 요구할 일이 있어 얘기를 하면 '하던거 끝내고 해줄께' 하면서 한참을 진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껄끄러운 관계가 생겼을 때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 마음에 남아서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다 간파한 듯이 대하면 서로 불편할 것 같아 그냥 무심히 지나가는 소리로
" 오늘같이 바쁜날 서무일까지 챙긴다고 고생이 많네. 나는 내 일만 챙기는 데도 정신없어서 옆도 못돌아보는데..."
했더니 활짝 웃으면서 '말이라도 고맙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없던 새로운 힘이 생기는것 같았다. 오해는 빨리 풀수록 좋고, 섬세한 감정의 여자들에게는 거기에 맞는 대응이 처세가 아닌 지혜라는걸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