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둘째 임신중에 하와이에서 맞은 할로윈 데이

안동꿈 2010. 10. 29. 19:42

그게 벌써 십여년 전의 일이다.

'영어특기자 교육' 6 주간의 과정 중 마지막주는 하와이에서 현장실습이 있었다. 나는 전체 여자 교육생중 유일한 기혼자였을 뿐 아니라, 임신 육개월 상태였다. 교육 명령이 났을 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덜컥 결정을 했는데, 9시간이라는 긴 비행을 임신 육개월의 몸으로 괜찮을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것 또한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교육생들은 5명씩 조가 짜여져 무조건 하와이에 던져졌다. 다른 조는 차를 랜트하여 멋들어진 관광을 계획하였는데, 우리조는 여자 다섯 명이 버스로 이동하며 관광겸 영어실습을 했다. 목적지를 물어가며, 교통수단, 숙박지도 물어물어 정하고, 버스에서도 각각 따로 앉아 옆 사람에게 끊임없이 말을 시키면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그때 관광지는 많이 둘러보지 못했지만 우리 나름대로 성실히 교육에 임했다고 자부한다.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10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각자의 마음에 간직된 '잊혀진 계절'을 되씹고 있을 즈음 거리에는 정말 사람들의 정신을 홀딱 빼놓을 각양의 기상천외한 분장들이 우리를 위협했다. 그때가 1996년이었으니 우리에겐 하와이에 머물면서도 당일날 저녁 거리에 분장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에는 할로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조원들은 여느때와 같이 밤 거리를 쏘다닐 생각으로 거리로 나섰고, 무섭게 분장한 사람들이 한껏 들뜬 기분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놀래키고 위협을 하는 통에 나는 정말 많이 긴장했다. 평소에 나는 크게 놀라거나 겁이 많지 않은데, 뱃속에 든 아기 생각에 정말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곧 익숙해져서 보시다시피 사자와 사진도 찍는 여유를 부렸었다. 

 

요즘 가끔 작은 아이에게 그런다.

"너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영어 공부를 엄청 많이 했거덩. 너는 영어 태교를  많이 한 셈이지. 그러니까 넌 영어를 엄청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단다."

하면서 구슬린다. 

그런데 그때 영어공부가 뱃 속 아이에게 준 영향보다, 할로윈 축제 행렬에 놀라 덜거덕 거린 마음이 더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으니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