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저녁강가 단상

아파트 쓰레기장에 버려진 누런 호박의 정체는.

안동꿈 2010. 11. 18. 19:42

어머님이 무릎 수술하시고 퇴원하시는 날 가족이 함께 시댁에 갔었다. 늘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저녁을 먹고, 설겆이 조차도 마음 편히(?) 못하도록 

"됐다. 나중에 모아서 하면된다. 피곤한데 어여 가라. 애비 기다리잖냐..."하시면서 성화이신데, 오늘은 수술한 두 무릎을 편 채 침대에 앉아 계신다. 평생을 가스렌지 불 한번 켠 적도 없는 일흔 중반의 아버님은 요즘 큰 모험을 하고 계신다. 어머님이 지시하시는대로 쌀도 씻고, 국도 데우고 그러신다.

 

퇴근하여 가족들과 함께 가려니 저녁 시간이 빠듯할 수 밖에 없다. 저녁 준비는 커녕 저녁 먹을 시간도 별로 이르지 않은 시간에 도착하였다. 대충 있는 걸로 저녁을 챙겨서 함께 먹고 반찬 몇 가지 해 놓는다. 그런데 부엌 옆 베란다에 못보던 누런 호박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거짓말 아주 조금만 보태서 자동차 타이어만하다. 어머님은 그 호박이 아파트 쓰레기장 옆에 버려져 있는거라고 하셨다. 아파트 쓰레기장에는 시골에서 농사지어 상경한 질좋은 농산물들이  가끔 선보인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메주와 찹쌀도 두고 간걸 가져다 유용하게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어머님과 이웃 어르신들은 그 농작물들이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힘들게 농사지어 질 좋은 놈들만 갖다준 걸 며느리들이 갖다 버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도 어머님의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저렇게 좋은 호박이 쓰레기장에 나와 있다면 그 이유외에 다른 이유가 없어 보였다. 젊은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갖다준 좋은 농산물이지만 요리할 줄 몰라서 버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리할 줄 모르면 이웃에게라도 나눠주면 정말 고마워할텐데 왜 버린걸까.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어머님은 나보고 호박을 가져가라고 말씀 하시더니 '아니에요'하는 나의 대답에 더 이상 권유하지 않으신다. 쓰레기장 옆에서 가져왔다는 것 때문에 별로 달가워 하지 않을거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누런 호박이 얼마나 실하게 보이던지 사실 욕심이 전혀 없진 않았다. 재래시장에 선보이는 농산물들은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어  가장 좋은 것들만 골라 자식들에게 갖다준 것에 비하면 형편없지 않은가. 나는 어릴 때는 농사에 둘러쌓여 있었지만 스물이 넘어서는 농사구경도 못한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가져다준 농산물을 먹어 보는게 소원일 정도다. 어쨌든 저런 귀한 농산물이 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