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이 가끔 필요하다고 느낀다.

안동꿈 2011. 2. 10. 12:10

어릴 때 집에서 놀다보면 가끔 이웃집 아주머니가 달려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아이고. 이 집 소가 우리 콩밭 다 망쳐 놨으이, 어쩌노 이제"

이런 소리가 들리면 나는 정말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 우리집 소는 내가 풀 많은 언덕에 매어 놓기도 하고, 엄마가 그렇게 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 소가 자기가 묶여 있는 곳의 풀을 다 뜯어 먹고는 더 먹을 것을 찾아 나부대다가 끈이 풀려 그런 일을 저지른 것 같다.

 

콩 밭 주인이 한 바탕 한 후 돌아가면 소도 원망스럽고, 어린 마음에 우리 엄마에게 쏘아 붙인 콩 밭 주인 아주머니도 원망스러웠다. 그런 날은 온 집안 분위기가 우울했다.

 

우리 어릴 땐 집안 형편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태풍이 불든지, 홍수가 났든지, 가뭄이 들든지, 혹은 풍년이든지, 추곡수매나 담배수매때 등급 판정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바뀌고...

부모님들이 우리들에게 굳이 이런저런 사정을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온 몸으로 느꼈고, 집안 분위기에 따라 우리들의 어떤 소망은 세상의 빛을 못 본채 사라진 것들도 참 많았다.

 

요즈음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집안 사정에 대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들이 걱정거리나 다툼거리가 있어도 아이들 몰래 의논하기 때문이다. 괜히 아이들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아이들이 구김살없이 컸으면 하는 모든 부모들의 바램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집안 사정을 시시콜콜이 알 것 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부모의 걱정거리가 무엇인지, 아빠엄마가 왜 심각한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눈치도 생기고, 세상 물정도 알 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우리 자랄 때와 비교해보면 요즘 아이들은 생각이 어리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약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가끔 부부싸움을 할때 아이들 눈치보면서 몰래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놓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자리가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긴장감이 자기를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며칠전 저녁 남편과 작은 다툼이 있었다. 작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집을 나갔다(마음이 답답할땐 집을 벗어나 동네 한바퀴 돌고오면 생각이 많이 정리된다). 날씨는 차고 갈 곳은 없어서 근처 도서관에 갔다. 열람실은 문이 닫겼고, 화장실에 삼십분이나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지금 돌아가면 효과가 없을텐데... 저녁 시간은 다 됐는데 식구들 배고플텐데...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한시간은 지나야지...'

한시간여 지났을까. 근처에 있는 시장을 찾아갔다. 평소와 다르게 느릿느릿 저녁 찬거리를 샀다. 떡볶이도 샀다. 핸드폰을 꺼놨는데 작은 딸이 전화를 서른번 넘게 했다. 집에 돌아오니 여유부린 나에 비해 오히려 딸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 엄마, 나 이제 잘할께 "

남편과도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한참을 풀어냈다.

이러한 이유로 부부싸움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면 억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