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소는 누가 키울거야.

안동꿈 2011. 5. 5. 07:30

요즘 인기있는 개그콘서트 '두분 토론'에서 박영진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라는 멘트로 많은 사람들을 웃긴다. 소 키우는 것 구경도 못해본 사람들로부터 어린시절 소 키운 추억을 가진 사람들까지 모두 웃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사람들은 요즘같은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 느닷없이 소를 등장시켰으니 그 모양이 우스워 폭소가 터질 수도 있겠고, 남자 어르신들은 자신들의 주도권을 거의 빼앗아간 여자들을 소나 키우라는 박영진의 호통에 속 시원히 웃지 않을까. 또한 여자 어르신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때 '소는 누가 키우냐'는 며느리에게 하는 것 같은 박영진의 호통에 웃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도저도 아닌 나는 어린 시절 소 키우던 생각에, 그 정다운 소 생각에 마음껏 웃는다.

 

예전에 소를 돌보는 것은 모두 아이들 몫이었다.

아이들은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친구집에서 놀다가 저녁상이 들어오면 그냥 보내지 않고 먹여서 보냈고, 거기서 그랬듯이 우리집도 그랬고... 온 마을이 일가고 온 마을이 친척이니 집 안이나, 집 밖이나 안전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러나 소는 늘 염려와 걱정의 대상이었다. 남의 농작물을 뜯어 먹을까. 병이 날까. 배가 고플까. 길을 잃을까...

 

아침에 일어나면 소들이 밤새 싸놓은 소똥을 치우는 것부터 시작된다. 끝이 넓적한 삽으로 소들의 다리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소똥을 긁어내는 것이다. 소똥을 다 치우고 난 후의 깨끗한 마굿간이 얼마나 나를 기분좋게 했었던지.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소죽을 끓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큰 과업이었다. 겨울에는 볏짚이 소의 양식이었다. 끼니때마다 짚을 썰어 끓여서 주게 되는데, 엄마와 늘 호흡을 맞춰 작두로 짚을 썬다. 이런저런 일로 시간이 늦어 어둑해져도 능숙한 솜씨로 엄마는 짚을 대고 나는 작두질을 했었는데, 단 한번의 작은 실수도 없이 지냈었다.

 

소죽을 끓이는 것과 함께 한가지 더 기억나는 것이 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소에게 조금이라도 더 챙겨 먹이려고, 소를 키우지 않는 이웃집에 설겆이한 물을 받아두게 해서 저녁마다 거두러 다니는 것이었다. 그 물이 진하고 건더기라도 좀 있는 날은 기분이 좋았고, 멀건 물만 있는 날은 신경질이 났다.

 

여름에는, 아침에 풀이 많은 곳에 소를 매어 놓았다가, 학교 갔다와서 소를 몰고 소먹이러 다녔었다. 친구들과 이렇게 소먹이러 다니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큰 즐거움이었고, 추억이었다. 우리 소가 배가 불룩해져서 집에 돌아가는 길은 내 배가 고파도 행복했다.

 

마굿간에 여러 마리의 소에게 여물을 나눌때는 긴장한 마음도 있었다. 소들이 그 커다란 눈으로 여물을 기다리고 있을때, 혹 여물의 양이 달라서 양이 적은 소가 섭섭해 할까봐서... 아니 솔직히 말해서 삐쳐서 근처에 갔을때 발길질이라도 할까봐서였다는게 맞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되도록이면 똑 같이 나눠 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던 것 같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 쯤에는 온 식구가 잠을 설쳐가며 기다리기도 했고, 큰 홍수가 났을 때 강물에 떠내려온 나무에 뿔이 빠져 온 집이 초상집 같았던 때도 있었다. 어릴때 소키우던 얘기는 참 무궁무진하다.  소도 생김새가 달라 소를 보면 누구집 소인지 알고 그랬다. 그래서 박영진의 '소는 누가 키울 거야' 라는 멘트는 나에게는, 아니 나와 같은 추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특별한 웃음을 주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