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재래시장에 가면 싱싱한 채소만큼이나 마음이 싱싱해진다.

안동꿈 2012. 6. 8. 20:10

나는 퇴근길에 재래시장에 들르는 걸 좋아한다. 집 근처에 큰 슈퍼가 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하긴 하지만 재래시장을 자주 이용하는 나는 슈퍼 물건들로는 성에차지 않는다.

 

퇴근시간은 배가 고프다못해 허기지는 시간이다. 시장을 봐서 저녁을 준비해서 먹을걸 생각하면 더욱 피곤해진다. 몸이 피곤하니 머릿속에는 저녁거리에 대한 산뜻한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단 시장에만 들어서면 생기가 돈다. 늘어선 싱싱한 야채들과 생선들을 보는 순간 봇물처럼 갖가지 요리들이 떠오르고 '이 싱싱한 재료들을 오늘 놓치고 나면 언제 또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서 주섬주섬 주워 담기 바쁘다. 재래시장에는 흙냄새와 바다냄새가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키웠다는 상추나 고추, 호박들은 모양은 못나도 귀한 보배를 만난 기분이다.

 

이즈음에 시장에는 특히 싱싱한 야채들이 풍성하다. 요즘은 하우스에서 자란 야채들로 계절이 따로 없다지만 하우스에서 자란 야채들과 이런 채소들은 색깔이나 향기부터 다르다.  마치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이 구분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문득 옛날로 치자면 요맘때가 보릿고개가 끝나고 갖가지 먹을거리들이 들판에 풍성하게 나오는 시기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풍성한 시대에 살면서 웬 뚱딴지 같이 겪어보지도 않은 보릿고개 얘기인가 싶은데, 퇴근시간 허기진 배는 마치 보릿고개와도 같은 것일지도...

 

요즘 시장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햇마늘을 보면 또 가슴이 마구 뛴다. 겨우내 수분도 다 빠지고, 뿌리가 뽑혀진지가 벌써 해를 넘겼는데도 봄이 온줄 온 몸으로 느낀 마늘이 싹을 쏙쏙 내밀면 이제 늙을대로 늙어 정말 맛없다.

 

그러면 시장에 마늘쫑이 나오고, 마늘쫑의 향긋함에 도취되어 있다보면 햇마늘이 곳곳에 널린다. 나는 그 햇마늘이 정말 좋다. 그래서 그 무거운 마늘 한 접 사들고 끙끙거리며 기분 좋게 돌아오곤 한다. 

 

재래시장에 가면 싱싱한 채소만큼이나 마음이 싱싱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