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는 자기와 아주 가깝다고 여기는 직장 선배나 동료들이 자기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내게 자주 했다. 때로는 그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을 물어왔고, 그 상황에서는 최선일 거라 여겨지지만 내가 당사자라도 선뜻 그렇게 할 자신은 없는 답을 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여느 때처럼 후배와 만나기로 한 시간에 그의 차에 탔는데, 분위기가 냉랭했다. 나는 가벼운 대화거리로 그의 마음을 읽으려고 그리고 달래려고 했다. 그는 불쑥 조금 무거운 주제를 내놓는다. 거기에 대해 나는 솔직한 평소의 나의 생각을 얘기했고, 그는 거기에 아주 냉소적으로 반응을 한다. 나는 기분이 조금 상했다. 왜냐하면 평소 후배와 자주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 주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나에게 그냥 반대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오늘 그에게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고, 나는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비록 나의 의견과는 달라도 그의 말에 동조할 수 있도록 애쓰며 얘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좀체로 따뜻한 분위기로 돌아오진 않았다. 나는 아무런 이유없이 부당하게 공격(?)을 당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상했고, 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말들이 떠올랐지만 그냥 묻어 두어 버렸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내 마음도 비슷하게 냉랭해져 있음을 알았다. 울적한 기분을 추스르려 애쓰다가 후배의 고민에 대한 생각이 함께 떠올랐다.
그가 가까운 사람에게 그의 마음 상태를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을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그런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할 때, 상대방은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하게 된다. 그때 상대방은 자신의 주위에 둘러처져 있는 보호막이 찢겨지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유지되었던 기본적인 예의의 공간은 파괴되어 버린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 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교훈으로 자주 듣는다. 어떤 이들은 가까운 사람끼리의 이 거리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관계가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후배가 늘 힘들어하는 가깝기 때문에, 허물없기 때문에 생기는 트러블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사람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가깝게 느끼고 싶고, 부담없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도 완벽하게 화해할 수 없다. 마음의 벽이 아닌, 예의와 자유의 공간은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허물어 버린 상대방의 그 공간은 또한 끊임없이 상대방이 언제든지 나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버린다.
내가 나의 기분 상태를 다스리며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예의를 지키는 것은 성숙한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늘 한결같은 사람' 이라는 말은 대단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항상 좋은 마음 상태일 수는 없다.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일어나는 감정이다. 그 사람이 정신적인 이상이 없는 한.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현재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늘 기대하는 상태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그렇게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자신의 기분만 소중하게 여기며 그 기분 상태를 고수하기를 고집한다면 상대방도 그 어려운 수고를 마다하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무방비하게 드러냄으로서 나는 또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며칠 뒤 후배에게 이러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우회적으로 알려주었다. 후배도 크게 공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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