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고향생각

안동꿈 2018. 2. 14. 07:00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 생각이 더 나고 어릴적 추억을 또다시 더듬어 보게 됩니다. 시골 출신들의 공통된 기억 중의 하나가 학교가 멀다는 것입니다. 여러 마을을 합하여 학교가 하나 뿐이니 다들 학교가 멀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학교 가는 길이나 집에 돌아오는 길, 그 먼 길에 뿌려진 추억들이 많습니다.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십리나 떨어진 면소재지에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때 걸어서 학교에 가다보면 지각을 할 때도 있었죠.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지각하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홍수때 다리 위로 물이 넘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일, 무리 중에 누군가가 벌집을 쑤셔서 같이 있던 우리들이 모두 벌에 물려 수업도 못 듣고 양호실에 누워있던 일도 있었습니다.


하교길은 더 다양한 체험이 많았지요. 초등학교 저학년때 한참 길을 가는데 옆 동네 고학년들이 우리를 세워놓고 책을 읽히기도 하고 팔을 들려 벌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학교폭력(?) 인 셈이지요. 그땐 저학년의 학교 적응을 위한 통과의례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은 집에 빨리 돌아와서 집안일이나 농사일을 도우라고 했지만 늘 정해진 시간 안에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길가에 주인 없는 산소나 강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지요. 특히 길가 산소는 우리의 더 없는 놀이터였죠. 잘 정리된 잔디며 낮아질대로 낮아진 무덤은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고무줄놀이나 다양한 게임도 하던 공부방 겸 놀이방이었습니다. 하늘을 보고 나란히 누워서 그날 배운 노래를 목청껏 부르기도 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놀아서 급한 마음에 풀이 무성한 좁은 길을 달려 갈라치면 앞서간 친구들이 묶어놓은 풀묶음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아니라도 길거리에 널려 있는 돌부리에 수시로 넘어졌으니 무릎이 성한 날이 없었지요.


가끔은 집으로 돌아가는 그 먼 길이 문득 지겨워져서 다른 길로 가 보자며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산길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길이 지름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산을 몇 고개 넘는데 지름길은 커녕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해가 뉘엿뉘엿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들의 일상은 늘 새로웠고 하교길 마저도 창의적이었다고 자부해 봅니다. 신작로 길을 갈때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경운기를 만나면 운좋은 날입니다. 모르는 어른이라도 좀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대답을 듣지 못해도 달리는 경운기에 가방부터 집어던지고 도움닫기를 몇 번 해가며 올라타면 됩니다. 경운기 주인은 못마땅해도 모른척하며 갑니다. 이미 탄 우리들을 내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요. 내릴 때도 알아서 내리는 겁니다. 조금의 뻔뻔함을 갖추고 스릴을 즐길 준비만 되면 편안하고도 빠르게 집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늘 학교를 오가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이 한 여름에는 '아. 겨울을 한 시간만 빌려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에도 그렇게 여름을 그리워 했었지요. 다리 아프고, 배 고프고, 춥고, 더웠던 그 십 리길을 매일 오가며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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