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아버님

안동꿈 2019. 10. 5. 22:19

한 달 보름을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계시던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벌써 한 달 전의 일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하시고부터 전혀 음식을 드시지도, 말씀을 하시지도 못하셨다. 하루 중 면회시간은 오전과 오후 각각 삼 십분씩 한 시간뿐이었다. 입원하기전까지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다가 갑자기 찾아온 폐색전으로 전혀 다른 세상 사람 같이 되셨다.


아버님이 낫기를 계속하여 기도하면서도 아버님의 몸 상태로 봐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니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이 두 기도의 무한 반복이었다. 한 달 보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아버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기다렸고 채워갔다. 그 시간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외아들인 남편이었다.


옆에서 보기도 안쓰러워 나중에는 내가 아버님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건지, 남편을 위한 건지 분간이 안되었다. 아버님이 말씀은 못하시지만 들을 수는 있다는 사실에 면회시간마다 남편은 아버님에게 끊임없이 얘기를 해드렸다고 한다. 어릴적 아빠와 아들의 사귐이 잊혀진지 오래. 각자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가장의 짐을 견디느라 차분히 마주앉아 본지도 오랜 세월이다. 이제 그 못다한 부자간의 사귐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나는 그 시간을 이 모든 인생을 아시는 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라 여겨져 시시때때로 눈물이 났다. 이 또한 한 발 물러선 며느리라는 신분이라 느낄 수 있었던 호사로운 감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아버지의 병상을 오갔던 한 달 보름동안의 아들은 몸도 마음도 너무나 많이 상했다. 


면회시간에 잠시 아버님을 뵙는 것 외에 가족들의 일상 생활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아버님은 저렇게 고통스럽게 누워계신데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고 먹고 자고 일하는 우리의 변함없는 일상이 우리를 더없이 고통스럽게 했다. 우리는 그 못견딜 부조화를 쓴 약처럼 하루하루 먹으며 가까이 다가온 아버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장례는 담담히 치루어졌다. 천국잔치처럼 또한 장례식처럼. 한 달 보름동안 조금씩 조금씩 우리 가까이 다가온 아버님의 임종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며 우리는 장례를 치룬 것 같다. 


누군가는 밤에 자듯이 가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가족들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영원한 이별의 고통이 얼마나 클까 생각해 보았다. 가족의 죽음을 수용할 수 있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그 고통의 무게는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이별의 고통을 앞에서 맞는 이들도 있고 뒤에서 맞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거기에 드는 시간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지금 가장 큰 외로움을 견디는 이는 어머님일 것이다. 지난 주간에는 할머니와 온천을 찾아 함께 목욕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단톡에 증거사진을 올린 두 딸을 칭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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