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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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책읽기

배움의 발견

안동꿈 2020. 6. 8. 13:32

 

토요일 오후,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한 챕터를 남겨두고 일어서 컷트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1주일 동안 뜨겁게 함께 했던 타라와의 이별을 조금이라도 유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고 간절히 믿고 싶은 그러나 실제 삶인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타라 웨스트오버의 삶.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믿기지 않아 수시로 책표지 안쪽에 있는 타라의 사진을 확인해 보곤 했다.

 

타라의 아버지는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몰몬교 근본주의자로서 일곱 자녀에게 전혀 학교교육을 시키지 않고 나이에 부치는 중노동과 각종 사고로 인해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가운데서도 의료적 치료를 전적으로 거부한다. 집을 떠났던 큰 오빠 숀은 기분내키는 대로 타라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타라는 십대 소녀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폐철처리 작업에 날마다 동원되고 오빠의 심한 폭력에 그저 자신을 이해시키며 설득하며 견디는 방법을 스스로 확보한다.

 

이 측은하기 그지없는 소녀가 서 있는 배경에는 늘 벅스피크의 봉우리 프린세스가 인자한 모습으로 누워있다. 아버지는 쉴새없이 폐철처리에 내몰고 폭력을 일삼는 오빠와 그 폭력에 못본 척 눈 감는 어머니. 그 사이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위로와 보호는 프린세스였던 것 같다. 말없이 베푸는 자연의 가르침이 그녀의 마음 깊이 흐르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다행히 가족을 떠나 대학을 간 셋째 오빠인 타일러를 통해 타라는 ACT(대입자격시험) 시험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배움의 무거운 철문을 열어젖히는 고독한 싸움을 혼자서 해낸다. 독학을 통해 ACT를 통과하여 브리검 영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 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케임브리지 교환학생으로 발탁되고 박사학위를 취득하기에 이른다.

 

16년간 학교 교육을 접해보지 못한 그녀가 ACT 시험을 독학으로 준비하면서 깨달아가는 배움의 발견은 놀랍고 감동적이다.

 

삼각함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공식과 등식들에서 나는 위안을 찾았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그 정리를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아는 물리학은 모두 폐철 처리장에서 배운 것이다, 그곳에서 배운 물리학은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웠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물리의 세계에서는 삶의 여러 차원을 정의하고 포착할 수 있는 원칙이 있었다. 어쩌면 현실이 모두 변화무쌍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실도 설명과 예측이 가능할지 몰랐다.”

 

그녀가 17년 만에 처음 접한 낯설디 낯선 학교라는 곳. 그녀가 브리검 영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 살벌하고 전쟁터 같은 그녀의 고향집, 모든 위험의 근원지인 그 부모의 집을 벗어나는 것이 그녀에겐 가장 안전해보였다. 그러나 타라는 오랫동안 고향의 가족에게서 자유롭지 못한다. 학문을 통해서 진리를 배우고 그로 인해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지만 완전한 자유의 마지막 발목을 잡는 것은 늘 가족이었다.

 

타라가 케임브리지와 하버드의 배움의 한가운데에서 하는 고백을 들어 본다.

 

내가 가난했고, 무지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한 치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수치심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오빠에게 목이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곳을 매우 완벽한 곳, 절대적인 곳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우리, 부모가 잘못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그러나 가정도 부모도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완전함을 인정하는 순간 폭력으로 인해 병들어 가는 가족들을 구해낼 수 없을 것이다.

 

타라는 완전하지 못한, 비정상적이고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자유가 억압받으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배움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지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더 배울수록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참된 배움은 진리이고 진리는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 타라가 자유로운 건 그 배움이 참된 것이라는 방증이다. 그녀의 배움의 성장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희망적이다.

 

타라는 드디어 이렇게 고백한다.

 

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