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가족 그리고 나

추석을 대하는 마음

안동꿈 2018. 9. 23. 15:46

추석을 맞아 스무 명 정도 되는 사무실 직원 중 세 명이 해외로 떠났다. 아가씨 둘과 아줌마 하나였다. 금요일 오후에 이른 퇴근을 알리며 떠나는 뒷 모습에 남은 사람들은 마냥 부러워 했다.


요즘은 결혼한 여자들의 명절 풍경이 다 같지는 않다. 가난하던 시절, 오랜만에 모이는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긴 시간 음식을 준비하여 명절을 치르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 시절엔 잠시도 짬을 낼 수 없이 손길을 기다리는 농사일, 멀리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모이기 쉽지 않던 교통, 평소에 먹는 음식과 차원이 다른 명절 음식들 그런 것들이 명절을 명절답게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주부나 며느리들도 그 특별한 시간들을 위해 마음과 정성을 쏟았던 것 같고 명절 스트레스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평소에도 주말마다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명절 음식보다 더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명절이 특별할 게 없다. 오히려 명절에 움직이려면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주부들은 그다지 애틋할 것도 없는 먼 가족 친척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일들이 스트레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부모도 이 명절 연휴를 불편하고 어색한 며느리들과 보내기보다 서로 편하기 위해 며느리에게 자유를 주기도 하는 게 아닐까. 명절 연휴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강제 휴가다. 일부러 맞출 필요도 없는 휴가기간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여행을 선택하는 것 같다. 사무실의 동료는 가족들이 의논하여 일주일 전에 차례를 미리 지내고 추석 연휴기간에는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 집은 여전히 예전방식으로 명절을 보낸다. 나는 명절 연휴 초반부터 명절 당일까지는 시댁에서 보내고 그 이후 하루 정도 날 잡아서 친정식구들과 만난다. 하나 뿐인 며느리인 나는 몸이 다소 고되기는 하지만 그다지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몸이 먼저 반응하여 명절이 시작되기 전에 몸져 누운 적도 있으니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지만 말이다. 


시어머니가 추석 1주일 전에 전화를 주셨다. '야야. 이번 추석에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마라. 우리끼리 밥 한끼 먹고 헤어지면 되는데 힘들게 준비할 것 없다. 내가 이것저것 사놨으니 아무 것도 사올 것도 없다.' 하신다. 남편에게도 얘기하시고 나에게도 전화하여 또 당부하신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며느리가 스트레스 받을까봐 노심초사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씁쓸하다. 요즘은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의 속마음을 방송을 통해서 듣고 대응을 하시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화두에 너무 흑백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음을 늘 느낀다. 명절에 주부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너무 관심을 쏟고 많은 미디어들이 그것을 집중 보도하기도 한다. 명절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부모와 자녀들 그리고 형제간의 만남과 교제 속에서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삶의 진실과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우리는 주로 평소와 다른 상황 가운데서 특별한 경험과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계속하여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를 언급하면 온 가족들의 관심은 그것에 맞춰지고 정작 우리가 누리고 맛보아야 할 아름다운 것은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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