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이 서울로 취직하여 간 지 여섯 달이 다 되어간다. 부모된 우리는 엄마처럼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바랬는데 그렇게 살면 재미없을 것 같다며 전공과 꿈을 좇아 서울로 갔다. 서울 가기 전, 두어 번 면접 보러 서울을 다녀오더니 원하는 곳에 합격했다며 좋아했다. 방을 구한다고 밤세워 검색과 고민을 거듭하기 며칠. 어느 늦은 밤, 잠자리에 든 우리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보증금 얼마쯤 보태줄 수 있냐'고 핼쑥한 얼굴로 묻는다. 서울살이가 그리 만만할까 싶어 보증금보다는 월세를 조금 더 내고 생활해보다가 조정하자고 했다. 그렇게 취직도 방도 딸내미 혼자서 다 해치우게 하고 서울 보낸 날 엄마가 해준건 격려 카톡 하나.
딸내미한테 해준 건 없으면서 밥 먹을 때마다 큰 딸이 좋아하는 반찬이나 찌개를 보면 마음이 아려온다. 서울 간지 한 달 남짓 지나 어버이날 낮이었다. 가족 단톡방에 아빠한테 계좌번호를 보내달란다. 돈을 보내줬나보다고 저녁에 집에 와서 물어보니, 십 만원을 보내와서 할머니 드리라고 해서 드렸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라 아빠가 '우리는 뭐 없냐' 하고 배짱좋게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아빠 계좌로 각각 오 십만원씩 보낸다. 깜짝 놀라 전화했더니 첫 월급이라 보낸다며 꼭 맛있는거 먹고 사진찍어 보내줘야 한단다. 아빠는 딸이 큰 맘 먹고 보내준 걸 표를 내야지 그냥 있으면 예의가 아니라고 고급 옷을 사고 나보고도 돈을 빨리 쓰라고 강요를 한다. 딸이 힘들게 번 돈을 쉽게 쓰지 못하고 고민하다 세월만 보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아빠 생일이 다가왔다. 남편은 자녀들이 부모 생일 챙길 줄 알아야 한다며 큰 딸이 잊어버렸을까봐 작은 딸보고 언니에게 알려주라는 식으로 압력을 넣기도 했다. 아빠 생일날 단톡에 캡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십 만원이 넘는 대게만찬코스 사진이었고, 아빠 계좌에 세 명 분 식사비를 보내면서 꼭 먹으라고 한다. 이번에도 나는 십 만원 정도로도 충분히 맛있는 것 먹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하고 당신 필요한 것 사라고 해도 '자기 생일 운운' 하길래 하자는 대로 했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가장 비싼 식사가 아니었나 싶다. 아낄 줄 알고 쓸 때 쓸 줄 아는 딸이 너무나 고맙고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