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과 전체 직원 워크샵을 위해 장산을 다녀왔다. 워크샵 이래봐야 등산 후 청사포 횟집에서 점심먹는 정도이다. 과별로 일정의 워크샵 비용이 배정되고 영화보러 가는 데도 있고, 우리처럼 등산, 혹은 1박2일 일정을 계획하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등산으로 정해지니 몇몇 여직원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오늘 드디어 장산 정상을 향해 정상같은 몇 곳(아니 몇몇 여직원들의 정상이기를 간절히 바라는)을 지나는 동안 산에 오면 산을 잘 타는 사람이 가장 멋있어 보이므로 1군은 늘 등수를 매긴다. '저질체력'부터 '복장은 안나푸르나 인데 산 타는거 보면 앞산 인데 ... '
청바지에 티셔츠 대충 걸치고 간 나는 '이거 뭐 장산 정도 오르는건 등산복장 갖출 정도도 못된다는 저 복장, 저런걸 가지고 고수 라는건가?'라는 소리까지 듣고.
나는 직장에서 등산을 했다하면 나의 과거사가 등장한다. 웬만한 남자들보다 거뜬하게 정상에 올라갔다오니 한마디씩 하지 않고 지나치기는 미안한건지. 특별히 운동하는 건 없지만 어릴적 앞산, 뒷산을 놀이터 삼아 오르락 내리락하였던 그 체력이 아직도 밑거름이 되는걸 보면 내가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릴적 고향 추억 한마디를 덧붙여 주면 나이드신 어르신들은 갑작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만다. 나의 어릴적 추억으로 등장하는 단골메뉴로는 초등학교때 다리가 불편하신 할아버지께 새벽부터 밭에 일하러 가신 엄마를 대신하여 아침밥을 챙겨드리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동생 둘을 잘 놀라고 타이르고 학교에 갈라치면 할아버지는 '숙아, 동생들 보그러 학교 가지마라'고 하시고, 나는 몰래 담을 넘어 학교를 향해 한참 달려 가다 보면 멀리서 동생이 '언니야, 할배가 학교 가지말고 오란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거역하지 못하고 돌아와서는 '할배요, 학교 갔다가 조퇴 맞고 금방 오께요' 하고 울면서 부탁하여 학교에 간 사연. 어릴적 추억은 이쯤 해두고 억새밭 구경이나.
오랜만에 다녀온 등산길.
장산 정상으로 가는길엔 억새밭이 아름다왔다.
이젠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바쁜 걸음을 옮기는 늦가을 곁에서,
아직 내겐 목마른 가을이기에
바람에 하염없이 부대끼는 억새들의 향연은
며칠을 먹지 않아도 될만큼 배부른 가을이었다.
장산 정상에서 바라본 해운대 신시가지
장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안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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