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며칠 앞두고 딸이 옷을 무려 네 벌을 사와서 안겨준다. 너무나 놀랍고 감격스러워서 할 말을 잃었다. 평소에 그리 살갑게 구는 딸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무슨 돈이 있어서 옷을 이렇게 많이 샀냐'고 하니 알바로 모아놓은 돈이 있었다고 한다. 딸은 수능이후부터 대학 2학년인 지금까지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오고 있다. 보쌈집부터 시작하여 편의점, 빵집까지...남편과 나는 젊은날의 고생은 모두 자산이라 여기며 딸을 굳이 말리지 않았었다.
딸의 말인즉슨, 엄마가 평소에 워낙 옷을 안사서 좀 여러벌을 샀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며칠 전 출근길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서며 버스 도착시간을 살피느라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실눈을 뜨며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어렴풋이 뭔가가 내쪽을 집중해서 쳐다보는게 느껴져서 돌아보니, 조금전에 학교간다고 나간 큰 딸이었다. 엄마가 되서 딸을 빨리 못 알아본 미안함에, 화들짝 놀라며 '아직 안갔냐'고 인사하고는 내가 탈 버스에 얼른 올라탔었는데, 저녁에 딸이 '엄마는 멀리 있어도 엄마 옷때문에 금방 알아본다'고 늘 몇 안 되는 옷을 입고 다니니 그렇단다. 그래서 굳이 어버이날 때문이 아니라 옷을 사주고 싶었다고 한다.
큰 딸은 늘 무뚝뚝하고, 엄마가 직장일로나 사람들과의 관계로 좀 다운이 되어 있을라치면 맞장구나 위로보다는 원론적인 말로 속을 뒤집는 편인데 표현은 하지 않아도 속 깊은 면이 있음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아빠걸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다. 아빠는 취향이 좀 까다롭고, 또 필요한건 고민안하고 사는 편이라서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안샀다고 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남편은 전혀 아니라고 하는데,
"좋은 딸 둬서 좋겠네."하면서 돌아서는 모습이 좀 섭섭한 듯 보였다.
남편 몰래 딸에게 가서 '아빠것 자그마한 거라도 하나 사라. 아빠가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냐. 예전에 엄마가 보세집에 가서 진짜 헐직한거, 안입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하나 사서 줬는데 그걸 얼마나 오래 입는지 손목이 다 헤지도록 입더라. 아무리 작은거라고 선물로 주면 고맙게 잘 입는 아빠다...' 라고 귀뜸해 주었다.
그랬더니, 어버이날 낮에 카톡이 와서 '아빠 옷 이거랑 저거랑 뭐살까. 사이즈는 뭘로할까' 묻는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아빠옷은 훨씬 더 고급으로 사 주었다. 몇 시간을 고민하며 여러 매장을 돌아다녀 골랐다고 한다. 남편이 좋아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부모나 어린 딸이 힘들게 벌어 아껴논 돈으로 산 비싼 선물을 받고 그 선물이 좋아서 기뻐하지는 않는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우리가 아이들을 헛 키우지는 않았다는 그 감격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그걸 두말하면 잔소리다.
나는 딸에게 옷 선물 받은 날부터 오늘까지 딸이 준 옷만 입고 계속 출근하였다. 딸이 무척 뿌듯해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