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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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의 통 큰 선물

큰 딸이 서울로 취직하여 간 지 여섯 달이 다 되어간다. 부모된 우리는 엄마처럼 안정된 직업을 갖기를 바랬는데 그렇게 살면 재미없을 것 같다며 전공과 꿈을 좇아 서울로 갔다. 서울 가기 전, 두어 번 면접 보러 서울을 다녀오더니 원하는 곳에 합격했다며 좋아했다. 방을 구한다고 밤세워 검색과 고민을 거듭하기 며칠. 어느 늦은 밤, 잠자리에 든 우리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보증금 얼마쯤 보태줄 수 있냐'고 핼쑥한 얼굴로 묻는다. 서울살이가 그리 만만할까 싶어 보증금보다는 월세를 조금 더 내고 생활해보다가 조정하자고 했다. 그렇게 취직도 방도 딸내미 혼자서 다 해치우게 하고 서울 보낸 날 엄마가 해준건 격려 카톡 하나. 딸내미한테 해준 건 없으면서 밥 먹을 때마다 큰 딸이 좋아하는 반찬이나 찌개를 보면 마음..

내 마음의 우물을 맑게 하는 것

내 마음의 우물을 맑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도 알 수도 없지만 나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곳에서 바르게 행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도구라는 것. 마트의 카트를 되돌려 놓을 때 정확하게 제자리에 끼워 넣는 것 화장실의 휴지를 적정하게 쓰는 것 누군가가 미워질 때 그 마음을 밀쳐버리는 것... 사람마다 그 방법은 다르지만 그것들이 쌓이면서 마음의 우물이 정화되는 정도를 그 자신이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비록 그것이 하찮아 보여도 그 우물로부터 생수를 얻기 때문에 그의 삶이 그것에 좌우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을 아는 자는 지혜로운 자일 것이다.

저녁강가 단상 2020.09.09

나의 가방 보고서

삼 십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면서 나에게는 시답잖은 가방의 역사가 있다. 삼 년에 한번씩 갈아치워도 열 개는 족히 넘는 가방이 나를 거쳐갔다. 나는 가방 취향이 까다롭지 않다. 책 한 두 권 정도 들어갈 정도의 넉넉한 크기면 된다. 그마저도 정리정돈을 잘 하지 못하는 나는 아침이면 내용물이 위로 올라온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뛰쳐 나올 때가 자주 있다. 나는 내 손으로 가방을 산 것이 몇 안된다. 나를 거쳐간 가방이 열 개 정도 된다고 볼 때 딸들이 두 세번, 남편도 한 두번 정도, 아이들 큰고모가 자기 취향 아니라고 던져 준 게 두어번, 교회 성도가 한 번, 내가 직접 산 것이 두어번 그 정도가 될 것 같다. 가죽제품의 경우 십 년 가까이 쓰기도 하고, 저렴한 가방(주로 내가 산 것)은 1년 정도 쓰면 수..

배타적으로 좋아함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말은 진실로 맞는 말이다. 올해 '미스터 트롯' 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유행에 민감하지 못하여 주변의 소동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어느 날 아침 사무실이 시끌벅적했다. 미스터 트롯 인기투표에서 시스템이 마비될 정도였다는 둥 몹시 소란스러워서 너튜브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그때 김○○ 이라는 가수가 눈에 띄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시간만 나면 그의 노래를 들었고 자꾸 접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가수의 모든 행동과 표정까지도 마음에 들었다. 때론 해야할 일들을 미루면서까지 거기에 몰두하였다. 특히, 너튜브는 더욱 이러한 환경을 조장한다. 한번 검색한 것은 계속하여 새로운 볼거리를 올려주니 피할 방법..

저녁강가 단상 2020.08.20

다시 온천천

1년 6개월만에 다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변화에 대한 적응은 나이에 반비례하는 것 같다. 나이의 무게가 만만찮은건지 익숙한 자리를 움직이는 일은 무척이나 힘겨워졌다. 그래도 이전에 근무하던 곳이라 곧 적응되리라 여겨진다. 출퇴근길의 잔잔한 즐거움이 담겨있는 온천천길. 괜스레 반가워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많은 비가 온 뒤라 하천 물도 풍성하게 흐른다. 이 길을 따라 또 몇 번의 계절이 오고 가려나... 내겐 이른 출근길의 로망이 있다.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고민들과 함께 다가온다. 아무도 없는 이른 출근 길은 비현실적이라 좋다. 때론 상쾌한 공기조차도 위로 못할 고민거리들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없겠는가? 그러나 매일 나에게 쏟아질 하루치의 하늘의 은총들을 매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삶이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아침 출근길에는 늘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특수학교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이들 무리를 볼 수 있다. 무심히 풍경처럼 지나쳤는데, 어느 날은 문득 그들의 고단한 삶이 마음 깊이 사무쳐왔다. 그들은 왜 고단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 그들에게 원인이 있는 것일까? 후에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답을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그 답을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며 그들이 이유없이 당하는 고난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들의 고통이 매우 숭고하게 여겨졌다. 동 세대에 함께 공유한 생명으로서 나눠가질 짐을 오롯이 부모라는 이유로 홀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들의 묵묵한 인내가 아름다웠고 그 고통마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그..

저녁강가 단상 2020.08.02

세바시 예찬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나는 이 강연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구독하는 몇 안되는 너튜브 중 가장 먼저 구독한 채널이다. 누군가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삶을 뒤집어 놓은 이야기라야 할 것이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하여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이야기는 몰입도가 매우 높다. 한 사람의 인생 여정에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하지만 각각의 성향으로 인해 일관되게 흘러가게 된다. 어떤 현상에 대한 해석에도, 갈등 상황에서의 선택에도 그 일관성이 작용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은 매우 놀랍게 다가온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다른 세계와 마주하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그래서 감동이다. 사람이 참된 가치를 만나고 지금까지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저녁강가 단상 2020.06.21

배움의 발견

토요일 오후, 나는 이 책의 마지막 한 챕터를 남겨두고 일어서 컷트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1주일 동안 뜨겁게 함께 했던 타라와의 이별을 조금이라도 유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고 간절히 믿고 싶은 그러나 실제 삶인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도 감동적인 타라 웨스트오버의 삶.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믿기지 않아 수시로 책표지 안쪽에 있는 타라의 사진을 확인해 보곤 했다. 타라의 아버지는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몰몬교 근본주의자로서 일곱 자녀에게 전혀 학교교육을 시키지 않고 나이에 부치는 중노동과 각종 사고로 인해 생명의 위험에 노출된 가운데서도 의료적 치료를 전적으로 거부한다. 집을 떠났던 큰 오빠 숀은 기분내키는 대로 타라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타라는 십대 소녀가 감당..

즐거운책읽기 2020.06.08

장미와 찔레꽃

출근길 버스정류소 옆 언덕에는 장미나무와 찔레나무가 나란히 있다. 장미에 비해 하얀 찔레꽃잎은 볼품은 없지만 촌놈인 나에게는 무척 정겹게 여겨진다. 어릴적 시골의 5월은 온 지천이 상큼한 찔레꽃 향기로 가득하다. 우리들은 찔레나무 옆을 지날때마다 늘 꽃잎을 따먹었다. 또한 찔레대는 우리들의 주요 간식거리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어릴적 추억말고도 최근에 생긴 찔레꽃 추억이 하나 더 있다. 몇 년 전 직장 동료들과 문경 통영을 둘러오는 여행을 다녀왔다. 문경에서 동심에 젖어 나란히 줄지어 레일바이크를 타고 있었다. 문득 철길 옆에 피어난 찔레꽃을 보고 나는 그만 감정에 겨워 예고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집을 읽으며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 중에서 내가 처음 읽은 책은 '내가 자랑하는 복음' 이다. 그 책을 읽은 후부터는 다른 모든 기독교 서적들은 읽기를 잠정 중단했다. 그 뿐 아니라 일반 서적들도 거의 읽지 않았다. 나는 책 한 권을 감동있게 만나고 나면 그 저자의 책만 집중해서 읽는 편이다. 스스로도 편식이 좀 과하다 싶어 직장에서 하는 독후 프로그램에서 다른 책을 시도해 보았지만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책은 대부분 설교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오 십 여년 전의 설교가 여전히 시의적절하고 열정적으로 다가온다.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것을 새록새록 깨달으며 읽는다. 최근에 요한복음 강해설교집을 읽는 중이었다. 직장에서 어려운 상황이 일어났다. 나는 공정한 과정을 거쳤고 그..

작은 신앙고백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