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매일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저녁 강가처럼 하루를 돌아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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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업무 시작

토요일 아침. 오늘도 오전 6시에 투석 가실 어머님께 전화드리고, 여느 때 같으면 다시 누워서 일주일간 시달린 심신을 쉬게 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베개를 부여잡고 있었을텐데 오늘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선거사무를 앞두고 업무 편람들을 잔뜩 싸들고 왔고 주말 동안 숙지해야 한다. 할 일은 마음을 긴장시키고 몸의 근육들을 탄력있게 한다. 교회 예배당에 내려가 '매일성경'을 소리내어 읽고 평소 급히 해치우던 아침 기도도 차분히 지난 일들을 회개하고 또 간구도 아뢴다. 집으로 올라와 몇 가지 지침들을 읽고 잠시 숨을 돌려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스트레칭도 일찌감치 해치웠다. 하지 않으면 안 될 큰 덩이의 일은 작은 일들을 빨리빨리 해치우게 하여 시간을 확보하게 만든다. 뇌의 이러한 역할은..

초벌 부추 무침

초벌부추 무쟈게 비싸지만 식구들에게 무쳐 주었더니 너무나 맛나게 잘 먹어서 또 샀다. 이번에는 가게 할머니가 묻지도 않은 레시피를 읊는다. "맑은 액젓, 매실 액기스, 고춧가루, 깨소금만 넣고 살짝만 젓어. 많이 젓으면 풋내나." "어머나. 제가 무치는 방법이랑 똑같네요." 스스로도 대견하여 시장봉다리를 흔들며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겨우내 차고 단단한 흙을 뚫고 올라온 여리디 여린 봄 것들은 귀하기 그지없다. 냉이가 그렇고 쑥이 그렇고 부추도 초벌은 그렇다. 이런 것들은 이 시기에 먹지 않으면 일 년 동안 못 먹는다. 세상에 맛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그깟 푸성귀랴 하겠지만 이런 것들은 저절로 자라 더욱 귀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 아니 온 세상이 신음하고있다. 계절이 주는 선물들에 만족하며 ..

북 파크

오후에 교육이 있었다. 교육이 예정보다 조금 일찍 마쳐 근처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파크랜드에서 기존 의류 판매공간을 작은 도서관으로 만들어 지역 주민들을 위해 제공한 곳이다. 도서관 천정에 넥타이들을 매달아 인테리어로 활용한 것이 특이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은 넓게 만들어 책을 읽을 수 있게 하여 여유와 자유를 느끼게 했다. 나는 도서관에만 가면 책욕심이 나서 이책저책 집으며 시간낭비를 하곤 한다. 그래서 그날은 바로 앉아 가방에 넣어다니는 책을 꺼내 읽었다. 넓은 창으로 밝게 비치는 봄 햇살과 젊은이들의 상큼한 기운이 기분좋게 했다. 물론 그들 각자의 가슴에 크고 작은 고민들이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것까지 살피기엔 봄이 나에게 너무 강렬했다.

봄밥상

점심시간에 재래시장을 지나다가 채소가게마다 늘어선 봄나물들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봄이 벌써 이렇게 완연한데 식구들에게 상큼한 봄나물 한번 챙겨주지 못한게 떠올랐다. 초벌부추와 몰을 사고 쑥봉다리는 들었다가 놓았다. 같이 간 팀장과 까만 시장봉다리를 하나씩 들고 기분좋게 돌아왔다. 그날 저녁에 곤드레를 물에 불려 삶아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곤드레밥을 지었다. 귀한 초벌부추를 무쳐내고 무우는 채썰어 몰과 함께 무쳐 봄밥상을 차렸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을 생각에 모든 어두운 생각들이 다 가라앉았다. 난리통 세상중에 계절은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 계절이 내놓은 보석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몫인가.